하루의 끝에서 만나는 나
하루가 끝나갈 때쯤이면, 나는 항상 같은 장소에 앉는다. 집 안의 작은 책상 앞, 책이 잔뜩 쌓여 있는 곳에서. 책상 위에 놓인 시계의 초침 소리가 나의 생각을 자꾸만 자극한다. 그 소리는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 나를 그 하루의 마지막 순간으로 이끈다. 이 순간은 내가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며, 또한 하루를 마감하는 의식과도 같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특별한 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서, 일에 몰두하며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 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비슷하다. 그런데 그 반복적인 일상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은 어쩐지 내가 시간을 낭비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하루를 마무리하는 순간만큼은 다른 시간들과 다르다. 이 순간, 나는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책상 위에 앉아 지난 하루를 떠올려본다. 아침에는 어떤 생각을 하며 일어났는지, 점심은 누구와 무엇을 먹었는지, 오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 그리고 저녁에는 무엇을 했는지. 그 일련의 과정 속에서 많은 감정들이 떠오른다. 기쁨, 슬픔, 피로, 고마움, 불안… 다양한 감정들이 지나가고, 나는 그것들을 차분히 받아들인다. 때때로 어떤 일이 나를 괴롭히기도 하고, 어떤 사람의 말이 마음에 걸리기도 한다. 그런 생각들은 마치 그날의 무게처럼 내게 남아 있지만, 하루의 끝에서는 그런 감정들이 조금 더 여유롭게 다가온다.
나는 그날 있었던 모든 일들을 지나간 일로 치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든 일들이 나를 만드는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일어난 일, 오후에 누군가와 대화했던 순간, 저녁에 혼자 앉아 있을 때의 고요함이 모두 나의 경험이고, 그 경험들이 모여 내가 오늘이라는 사람을 만들어갔다. 그래서 하루를 되돌아보는 시간은,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는 시간이 된다. "오늘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내가 정말로 나 자신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일들에 쫓기며 살아간다. 업무, 사회적 관계, 가족, 친구… 이런 일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것들이 우리에게 너무 많은 압박을 가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잃어버릴 수 있다. 나는 종종 그런 상황에 처해 있을 때가 있다.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 내가 아닌 누군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순간에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하루를 되돌아보며,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그 속에서 나를 찾을 수 있다면,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하루의 끝에서 만나는 나 자신은,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 된다. 내일의 걱정, 과거의 아쉬움, 그런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오늘만큼은 나 자신과 온전히 대면하는 시간이다. 나는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무엇보다 이 순간에 나는 어떤 이유로든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루가 지나갔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성숙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믿어지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하루의 끝에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더욱 즐겁고 평화롭게 느껴진다. 아마 그동안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그 경험들이 나를 이끌어준 덕분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삶이 주는 의미와 가치가 더 분명해지고, 그런 점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은 더욱 특별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그렇게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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