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른 채 서 있었다. 햇살은 아직 따가웠고, 바람은 그날따라 유난히 부드러웠다. 모든 것이 저물어 가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동시에 새로 시작할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도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멈춰서 있었다.
어릴 적, 나는 늘 여름을 기다렸다. 뜨겁고 길었던 그 계절은 학교도 쉬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여름은 무언가 시작되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계절이었다. 여름 방학 동안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만나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푸르른 하늘 아래에서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달리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 시절, 여름은 언제나 내게 변화와 설렘을 주는 계절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름의 의미는 조금씩 달라졌다. 여전히 더운 날씨와 긴 낮은 익숙했지만, 그 시절처럼 자유롭고 끝없이 펼쳐진 가능성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여름이 끝나가는 시점에 나는 뭔가 놓친 것처럼 허전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 여름, 나는 그와 같은 허전함을 더 깊이 느끼게 되었다. 아마 나이가 듦에 따라 여름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과연 나는 지금까지 잘 살아왔을까?’ 이 질문은 평소에 느끼지 못한 깊은 내면의 갈망을 일깨워주었다. 어릴 적처럼 무작정 떠나고 싶었던 여행도, 친구들과 함께 떠들썩한 시간을 보내는 일도 이제는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나는 차분하게 생각했다.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름이 끝나가면서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여름이 끝날 무렵, 나는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 집 근처의 작은 산을 오르기로 했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자주 갔던 그 산은 여전히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산을 오르며 그동안 지나쳤던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그저 그 산이 놀이의 장소였을 뿐,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평온한 기운이나 자연의 소중함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묻고 있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여전히 나는 많은 것을 이루지 못한 채, 많은 것들이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단순히 성취나 목표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삶의 의미는 결국 그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데 있음을, 그 여정 자체가 중요한 것임을 느꼈다. 오랜 시간 지나 다시 올라간 그 산은 내가 바라보던 그 산이 아니라, 내 안에 숨겨진 나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여름이 끝나는 순간, 나는 이전의 불안정하고 무언가 결핍된 느낌을 더 이상 갖지 않기로 결심했다. 물론 내가 이루어야 할 목표들은 여전히 많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도 많겠지만, 그 모든 것이 내가 살아가는 여정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로 했다. 여름은 끝났지만, 그 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모든 계절이 그렇듯, 끝나고 나면 새로운 계절이 다가온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여름이 지나가면서 느낀 그 모든 감정들을 새로운 삶의 에너지로 삼고자 한다.
어릴 적, 여름이 끝날 때마다 아쉬워하던 나의 모습은 이제 조금 다르게 보인다. 더 이상 아쉬워하지 않고, 더 이상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지금의 나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향해 걸어갈 것이다. 여름이 끝나면, 다음 계절이 시작된다. 그리고 나는 그 계절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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