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조각들
어느 날, 나는 오래된 일기장을 발견했다. 먼지가 쌓인 서랍 속에서 그 일기장은 나에게 잊고 있던 기억들을 끄집어내며 조용히 속삭였다. 어린 시절, 손끝에 묻은 잉크와 연필 자국들 속에 감춰진 이야기들은 내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 때의 나는 무엇을 두고 떠나갔을까?
나는 그 일기장을 펼쳤다. 페이지마다 나의 어린 시절이 담겨 있었다. 색연필로 그린 그림, 친구들과의 사소한 일상, 그리고 그 시절 나만의 작은 고민들. 이 일기장은 단지 나의 과거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나의 성장과 변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기록이었다. 시간을 지나며 잊혀졌던 작은 순간들이 다시 살아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가끔 너무 예민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두렵고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내가 쓴 일기들을 읽다 보면, 대부분이 불안감이나 혼란스러움을 표현한 글들이었다. 누군가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불안했던 걸까? 왜 세상의 모든 것이 나에게 위협이었을까? 그 당시의 나에게 세상은 그저 생소하고 불확실한 미로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불안 속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만의 세상은 있었다.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는 일이 그랬다. 작은 방 안에서, 나는 그 안에 모든 세계가 존재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그 당시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았던 것 같다. 그게 나에게는 유일한 안식처였으니까. 어린 시절의 나에게 그림은 그저 즐거움의 도구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나를 위로해주는 중요한 방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며 조금씩 변해갔다. 어린 시절의 불안은 어느덧 자리에 앉아, 나를 떠난 듯했다. 하지만 그 여운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나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끊임없이 나를 요구했다. 내 모습을 보여줘야만 했고, 그로 인해 나는 점차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사회 속에서 점차 나는 내 모습을 지켜가기보다는,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기억은 여전히 어린 시절에 있다. 세상이 나를 요구하기 전, 나는 나 자신만의 세계에서 평온함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기록하고, 그것을 그림이나 글로 풀어내며 자신을 위로할 수 있었다. 그 작은 공간이 나에게는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었음을 이제는 알 수 있다.
오늘날, 나는 여전히 때때로 그 어린 시절의 나를 그리워한다. 성인이 되어 현실에 맞서야 하는 삶 속에서, 나는 자주 그 어린 시절의 나를 찾아 나선다. 그 시절의 나는 세상의 모든 기대에서 자유로웠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솔직했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든, 그때의 나는 자신을 숨기지 않았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몰두할 수 있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불안도 그 안에서 잠시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 나는 더 이상 그때처럼 자유롭게 살 수 없다. 사회 속에서 요구되는 역할을 맡고, 책임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씩 그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그 시절 나에게 돌아갈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요구와 기대에서 잠시 벗어나, 나만의 세상에 다시 들어가고 싶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지만, 그 시절의 나는 나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주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 나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시간은 흘러가고, 나는 점점 더 많은 책임을 지게 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만의 세상을 찾는 방법을 잃지 않으려 한다. 그 작은 일기장 속의 나처럼, 나는 여전히 내 속마음을 적어내려가고, 그 안에서 위안을 얻는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든, 나는 나 자신을 잃지 않도록 노력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나는 그런 가르침을 받았고, 그것은 지금도 나의 삶을 이끌어가고 있다.
오늘도 나는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본다. 그때의 나와 마주하며, 그 시절의 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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