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기억의 조각들이 모여 만든 풍경


기억의 조각들이 모여 만든 풍경

어떤 이들은 삶의 중요 순간들이 마치 큰 그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하나의 커다란 장면으로 기억된다. 반면, 나는 삶의 풍경을 이루는 작은 조각들이 하나씩 떠오르는 편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기억은 그저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끔은 그 작은 조각들이 모여 어떤 의미를 찾게 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모였는지, 어떤 순서로 이어졌는지 고민하게 된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 댁에 갔던 기억이 자주 떠오른다. 그곳은 내가 처음으로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품었던 장소였다. 할머니는 항상 꽃밭에서 꽃을 기르셨고, 그 옆에 작은 연못이 있었다. 그 연못에서는 여름마다 붉은 꽃잎을 가진 수련이 피었다. 나는 그 수련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왜 이 꽃은 수면 위로 나와야 할까?”라는 질문을 할 때마다 할머니는 웃으시며 이렇게 말했다. “자연은 그냥 그렇게 되는 거야. 이유가 있어야 아름답지 않니?” 그 당시에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그저 할머니의 따뜻한 미소와 함께 내 마음속에 그 꽃이 피어나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부터 나는 ‘자연’이라는 단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연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품고 있다고 믿었다. 때로는 우리가 그 의미를 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자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게 중요한 삶의 철학이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이든 이해시키려 하거나, 삶에서 꼭 필요한 의미를 찾으려 할 때, 나는 종종 ‘자연스럽게’를 떠올리곤 한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되어가며, 그런 과정을 겪으며 우리가 조금씩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또 하나의 기억은 중학교 시절, 친구와 함께 길을 걷던 순간이다. 그때 나는 그 친구와 함께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하거나, 무엇인가를 논의하기보다는 그냥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순간들이었다. 그 친구와 나누던 대화는 항상 단순하고 소소했지만, 그 작은 순간들이 쌓여 나에게 큰 의미가 되었다. 나는 그때 그 친구가 내게 무엇을 말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않는다. 다만 그때 느꼈던 웃음과 편안함은 지금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다.

그 순간들이 내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이루었다는 것을 나는 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큰 사건이 없다고 해서 그 순간들이 덜 중요하다고 여길 필요는 없다는 것을. 때로는 큰 대화나 사건 없이 그냥 함께 앉아 있거나, 함께 걸어가며 느끼는 것이 진정한 친밀함을 이루는 순간일 수 있다. 우리는 때로 가장 중요한 순간들이란, 우리가 스스로 그 순간을 소중하게 여길 때 더욱 의미 있는 것임을 잊곤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기억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 사람들도 세월의 흐름 속에서 잊혀질 때, 남는 것은 결국 ‘기억’이다. 어쩌면 그 기억은 우리가 살아왔던 방식, 우리가 지나왔던 길을 알려주는 단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억이 선명하게, 또 완벽하게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기억은 왜곡되기도 하고, 순간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이루는 한 조각이 되어,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조각이 된다.

가끔은 어떤 기억들이 떠오르면, 그때의 감정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기분이다. 그때 그 사람의 목소리, 그때 그 장소의 공기, 그때 그 표정이 온전히 다시 떠오른다. 그러나 그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 흐려지고, 남는 것은 그때의 느낌과 함께 떠오른 몇 개의 세부적인 장면들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흩어져 가는 기억들이 나를 이루는 중요한 일부가 되듯이, 나 역시 그 기억들 속에서 성장하고 변화해 왔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순간들이 언젠가 기억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그때,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날 것이다. 그 시점에서 나는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과 생각을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분명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순간들은 내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나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어 있을 것이다.

기억은 단순히 지나간 과거의 조각들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나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들이다. 나는 앞으로도 기억 속에서 조각들을 하나씩 모으며, 그 기억들이 나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