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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한 여름의 기억


그림 속 한 여름의 기억

어느 날, 나는 오래된 사진첩을 열었다. 그 안에는 어린 시절의 내가 담긴 수많은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 중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내가 여름날, 시골 외할머니 집 앞마당에서 꽃을 따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진 속 나는 하늘이 푸르던 그날처럼 맑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순간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사진 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와 여름의 향기가 그대로 전해져 왔다.

그 여름은 정말 특별한 기억이다. 외할머니 집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마을에 있었다. 그리고 그 집 앞마당은 마치 작은 정원 같았다. 그곳은 매년 여름마다 꽃들이 피어나는 곳으로, 색색의 꽃들이 곳곳에 만개해 있었다. 나는 그 꽃들을 보고 자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물곤 했다. 해바라기, 국화, 장미, 라벤더, 그리고 무궁화까지, 그 꽃들 속에 숨겨진 나만의 세상이 있었다.

특히, 그날의 꽃들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해가 뜨고,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던 그 시간, 나는 외할머니가 심어놓은 해바라기들 사이에서 꽃을 따고 있었다. 해바라기 꽃들은 너무 커서 꽃잎이 내 얼굴을 가릴 만큼 자주었다. 꽃잎을 한 장 한 장 뜯어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여름의 뜨거운 햇볕이 내 얼굴을 후끈후끈하게 달구었지만, 그보다 더 따뜻했던 것은 외할머니의 품이었다. 외할머니는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내가 꽃을 따면 "잘 했네, 예쁘게 잘 따야지"라며 칭찬해주셨다. 그때는 그저 즐거웠고, 무엇보다 그 순간이 소중하다는 걸 알지 못했다.

시골 마을의 여름은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특별한 매력을 지녔다. 외할머니 집은 그 마을의 한쪽 끝자락에 있었기 때문에,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여름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밭에서 일하거나 집 앞에서 쉬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시골길을 뛰어놀며, 바람에 실려 오는 풀 냄새와 흙 내음 속에서 하루를 보내곤 했다. 나는 그 여름날, 외할머니와 함께 꽃을 따고, 바람에 나부끼는 풀밭 속에서 뛰놀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모든 것은 지나가 버렸다. 나는 도시로 돌아와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고, 외할머니 집을 찾을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결국 외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그 이후로 나는 그곳을 다시 찾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여름의 기억은 조금씩 흐려져 갔다. 하지만 그때의 따뜻한 햇볕과 꽃들의 향기, 그리고 외할머니의 미소는 여전히 내 마음속 깊숙이 남아 있다.

그 사진을 다시 본 순간, 나는 그때의 여름을 떠올렸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사람들도 변한다. 그러나 그 변함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기억이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마음속에서 되살아난다. 그때의 여름은 내게 그런 존재가 되었다. 나는 그 여름날의 사진을 바라보며, 그때의 느낌을 되새기며 조금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여름은 그저 한 계절에 지나지 않지만, 그 안에서 경험한 소중한 순간들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에게는 여름이 지나고 나면 잊혀진 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나에게 그 여름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꽃을 따던 그 순간, 외할머니의 품에서 느꼈던 따스함, 그 모든 것이 내 마음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 여름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나를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사진첩 속의 그 한 장의 사진을 다시 들여다본다. 그 사진 속의 나는 꽃을 따고, 세상의 모든 것이 밝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여름이 지나도, 그 여름의 기억은 내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