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다시 돌아온 풍경 속에서
가을이 온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여름의 열기가 한창일 때, 가을이 온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날씨는 점차 서늘해지며, 나는 비로소 가을이 찾아왔음을 실감했다. 가을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내 마음과 세상의 풍경을 바꿔 놓는 하나의 큰 흐름처럼 다가왔다. 그 변화의 순간을 함께 느끼는 것만으로도 가을은 언제나 특별했다.
매년 가을이면 나는 고향을 찾는다. 고향은 내가 자란 작은 마을로, 이곳은 여름이 지나면 마치 다른 세상처럼 변한다. 초록의 물결을 이루던 들판은 이제 황금빛으로 물든다. 그 색은 단순한 단풍이 아니라, 세월의 무게와 세심한 기억들이 얽혀 있는 색이었다. 오랜만에 고향의 길을 걸을 때마다 나는 그 길에서 내 어린 시절을 마주하게 된다. 이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끝없는 넓이를 느꼈고, 또한 무수한 꿈을 품었다. 고향의 풍경은 그런 내 꿈들이 자라난 배경이자, 그 꿈들이 아직도 살아 숨쉬는 곳이었다.
가을바람이 부는 길을 걸을 때면, 나는 그 바람 속에서 무언가를 떠올린다. 아마 그것은 어릴 적 나를 웃게 했던 작은 일들일 것이다. 언제나 가을이 되면, 고향의 길을 걸으며 들을 수 있었던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웃고 떠들던 얼굴들이 떠오른다. 시간이 흘러 모두들 떠나고, 내가 떠났던 곳으로 돌아가면 그 자리에 변한 것들이 많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바로 그 감정이었다. 고향의 길은 예전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을의 또 다른 매력은 밤하늘이다. 고향에서의 가을 밤은 서울의 밤과는 완전히 달랐다. 서울의 밤하늘은 불빛 속에 가려져 있고, 그 너머의 별을 쉽게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고향의 밤은 다르다. 길가의 가로등 하나 없이도 하늘은 그 자체로 환하다. 별들이 무수히 반짝이고, 그 빛은 마치 내 어린 시절의 꿈처럼 선명하고 반짝인다. 나는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린다. 가을밤의 하늘은 나에게 언제나 그리움의 끝자락에 서 있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그 시절을 놓아버릴 수 없다는 증거일 것이다.
고향을 떠나면서 나는 이 풍경이 다시는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어느덧 다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풍경 속에서, 나는 여전히 그곳의 일부로 남아 있었다. 고향의 길을 걸을 때마다 나는 그곳에서의 모든 순간이 다시 살아나듯 느껴졌다. 비록 그때의 내가 아닌 지금의 내가 그 길을 걷고 있지만, 그 순간은 여전히 그때 그대로였다. 그때 그곳에 내가 있었듯, 이곳은 언제나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
가을은 끝없는 변화를 상징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나무들은 그동안 기르던 이파리들을 떨구고, 이제 그 자리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기 위해 기다린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나는 가을이 주는 평온함을 느낀다. 변화는 때때로 불안하고, 때때로 두려운 것이지만, 가을의 변화는 그런 불안함을 잊게 한다. 가을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나를 이끈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도 함께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가을은 또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일깨운다. 들판의 풍성한 수확, 고향의 변화, 그리고 내 삶에서 만나온 사람들. 그 모든 것들이 함께 만들어낸 가을의 풍경 속에서 나는 감사함을 느낀다. 매년 가을이 되면, 나는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나는 내가 받은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 가을은 그 감사의 마음을 더 깊이 깨닫게 해주는 계절이다.
올해도 다시 고향을 찾은 나는 그 길을 걸으며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어느덧 나는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 사람처럼, 가을의 모든 것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가을은 다시 나에게 찾아올 것이고, 나는 그때마다 변한 모습으로 그 가을을 맞이할 것이다. 그 가을이 주는 의미는, 바로 그 변화 속에서 나를 다시 발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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